|
네덜란드 영화 |
|
|
희망찬 시작 서유럽의 한 나라로, 네덜란드 역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건전한 오락물의 하나로 외국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하면서 일찍이 영화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896년 초에는 방해받은 낚시꾼이라는 네덜란드 최초의 허구영화가 탄생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윌리 뮬렌이란 영화제작자는 그가 가진 새로운 촬영기법과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코미디영화 잔도로프 해변의 바지 없는 프랑스 신사의 불운(1896)으로 네덜란드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다. |
| 흥망성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는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영화산업은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나 번영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이 번영의 시절에는 독일의 나치당으로부터 도망쳐온 많은 독일 감독들 덕분에 연간 제작되는 영화의 수가 보통 여덟 편 정도에 달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네덜란드는 나치에 의해 일시적으로 점령을 당하고 영화 또한 그들의 선전용 도구로 이용되었다. 제3제국시대라 불리는 이 시절에 개봉된 영화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로는 볼셰비키 사상에 대항한 독일과 함께 (1941),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다 (1941), 그리고 독일에서의 일 (1942)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네덜란드 영화는 전체적으로 힘을 잃지만, 학회를 만들고 영화제작을 위한 자금을 조성하는 훌륭한 다큐멘터리 감독과 단체들이 나타난다. 50년대 말의 이 시기에는 버트 한스트라 감독은 영화 팡파르 (1958)와 아카데미상 수상작, 유리라는 영화로 일약 스타가 된다. |
|
|
|
변화 70년대, 또 한 명의 감독이 네덜란드 영화사를 새로 쓰게 된다. 감독 폴 버호벤은 카티 티펠 (1975), 오렌지 군인 (1977), 그리고 스페터스 (1980) 와 같은 초대형 영화들로 크게 성공해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이 시절 네덜란드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발걸음을 돌려 픽션영화로의 모험을 시작한다.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국내에서 이미 유명해진 폴 버호벤 감독은 로보캅 (1987), 토탈 리콜 (1990), 논쟁이 되었던 원초적 본능 (1992), 스타쉽 트루퍼즈 (1997) 그리고 할로우 맨 (2000)과 같은 할리우드 영화로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10년의 세월이 흘러 80년대 초에는 네덜란드 영화산업이 다시 하락의 길을 걷게 되지만 딕 마스와 당시 아주 시끄러웠던 테오 반 고흐와 같은 감독들은 자신들의 관점으로 사회문제를 그리는 작가들의 영화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건 이 80년대에 네덜란드는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번에는 1986년작, 한밤의 암살자로 찬사를 받은 폰스 라데메이커 감독이었다. |
|
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네덜란드 영화는 주로 국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청소년 문제를 다루는 TV 영화나 미니시리즈에 중점을 두어왔다. 영화 코스타 (2001)와 허쉬 허쉬 베이비 (2004)가 이 시기 가장 유명한 작품들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