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영화

라트비아 영화

뤼미에르 형제가 프랑스 파리에서 첫 영화상영을 한 지 6개월 후에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도 웅장한 살로몬스키 서커스를 통해 프랑스인들과 같은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그 후 5년 동안 라트비아 자본가들은 로열 바이오와 같은 많은 극장을 설립하여 영화를 상영하였고 이후 영화의 밤이 리가의 베르만 공원에서 개최되었다.

다른 유럽국가들과 운명을 같이하는 라트비아의 최초의 영화는 다큐멘터리였다. 알렉산더 스탄케 감독의 이 새로운 모험은 라트비아의 수도에 있는 베드로 1세의 취임비에 관한 내용이었다.

Lacplesis

라트비아 영화에 대한 정보와 공식자료의 결핍으로 이 나라 최초 장편영화의 정확한 날짜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분분하다.

일부 역사가들은 최초의 무성영화가 만들어진 때를 1913년 이후로 추정하고 있으나 한편 다른 이들은 알렉산더 러스테이키스 감독이 라츠플레시스를 제작하는 30년대까지 기다려야 했다는 설을 고수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이 당시 리아 마라와 마리아 레이코와 같은 배우들이 라트비아 영화계에서 최초의 유명 여배우가 되었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불름베르그, 에드가, 볼데마 이 세 집안에 의해서 라트비아 영화제작사가 세워지게 된다. 그와 동시에 에드워드 크라우스, 제니스 실리스, 아놀드 칼리티스와 같은 전직 사진작가들이 영화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때 가장 유명했던 영화는 빌리스 라페니크 감독의 어부의 아들 (1939)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끝나고 라트비아는 소련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고 영화산업 또한 – 소련의 다른 나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 소련의 재정적 지원과 함께 감시와 검열을 받게 된다. 파벨 아르만드 감독의 한 라트비아 소총수의 이야기 (1957)와 알렉산드라 레이마이스 감독의 토바고 진로를 바꾸다 (1965)란 영화들은 소련정권에 의해 조장된 새 선전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1991년 독립 이후, 라트비아 영화는 인권, 특히 아동 인권 신장에 두각을 보이는데 제니스 스트레이크와 바리스 브라슬라와 같은 감독들은 시카고 국제어린이영화제를 비롯한 많은 영화제에서 주요 부문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Vilis Lapenieks

Pa celam aizejot

최근에 와서는 웁살라 국제 단편영화제 우승을 차지한 우마 셀마 감독, 베를리나데 영화제에서 후보에 올랐던 바리스 브라슬라 감독, 래디언스 영화제에서 데뷔작 소년 (원제: Pa celam aizejot,2001)으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비스투르스 카이리스 감독이 라트비아에서 가장 빛을 보고 있는 감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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