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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영화 슬로바키아 영화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려면 우선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가 같은 전통예술을 지닌 하나의 나라였던 체코슬로바키아 시절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체코와 마찬가지로, 슬로바키아 영화 또한 1921년에 야로슬라프 샤켈 감독의 장편영화인 야노식과 함께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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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전문화 체코슬로바키아 영화의 초기에는 대부분의 영화 줄거리가 종종 교외의 풍경을 보여주며 체코슬로바키아의 전통과 민속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슬로바키아가 최초로 독립하기 1년 전, 브라티슬라바에 있는 산업예술학교 내에 체코슬로바키아 최초의 영화과가 설립되었다. 이 첫 번째 기관 – 전문가들이 유럽에서는 5번째라고 하는 – 은 미래의 아카데미상 수상자, 감독 잔 카다와 다른 많은 학생에 의해서 운영되었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지는 못하고 1939년 나치독일의 의존국이였던 초기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독립 이후,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
| 검열 회피
나치 "제국"의 일부로, 슬로바키아 영화 제작사들은 단편영화 제작을 위한 스튜디오 '입구'를 통해 선전뉴스영화 제작에 혼신을 받치게 된다. 몇 편의 영화가 제작될 수 있었던 짧은 기간의 독립 체코슬로바키아의 통일 후, 또다시 검열이 시작되었는데, 이번에는 소련 사회주의 정권에 의해서였다. 50년대에서 70년대 초 사이에는 팔로 비엘리크, 바클라프 쿠바세크, 유라이 헤르츠와 같은 감독과 함께 사회적 사실주의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화를 장악하게 되었다. 그들의 영화는 투쟁은 내일 끝날 것이다 (1951)라는 영화와 같이 노동자계층의 사회적 변화와 진보를 그려냈다. 다른 감독들도 소련 당국의 허가를 받아 2차 세계대전과 나치 정권의 몰락과 같은 주제를 다루기도 하였는데, 그 훌륭한 예가 되는 영화가 바로 유라이 헤르츠 감독의 화장터 인부 (1968)라는 영화로 '최종 해결책'에 대한 블랙 코미디영화로 나중에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공화국에서 컬트영화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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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불리한 환경 70년대에서 90년대 초에는 슬로바키아 영화에 대한 공산주의 검열이 조금 누그러지게 되는데 그 결과로 비록 많은 이들에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혁신적인 영화감독들에게 모험과 소설의 주제를 다룰 기회가 제공되었다. 이 시절 두각을 나타내었던 영화로는 두산 하낙의 장밋빛 꿈 (1976), 아이 러브, 유 러브 (1989), 그리고 조로 자혼의 더 어시스턴트 (1982)가 있었다. 소련에 속했던 대부분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슬로바키아 영화도 지원금의 부족, 소련의 붕괴와 체코슬로바키아의 분리와 같은 최근 정치적 변화로 하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슬로바키아 영화산업은 완전히 주저앉지 않았다. 이 탈공산주의 시대의 대표적 영화로 마틴 슐리크 감독의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 (1992), 그리고 꿈꾸는 정원 (1995)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