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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영화 비록 영화에 관한 오랜 전통은 없지만, 아일랜드 영화산업은 그들의 뛰어난 창의력 덕분에 유럽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널리 알려졌다. 때는 1986년 4월, 뤼미에르 형제의 그 유명한 영사기가 파리에서 처음 선을 보인지 일 년이 지나서, 헨리 졸리는 사크빌 거리를 걷는 사람들, 칼라일 다리 위의 교통체증, 도심 속에서의 제13회 후사르 행진이란 제목으로 최초의 활동사진을 찍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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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영화시대 1900년대에 들어와서 처음 10년간 아일랜드 영화는 아일랜드 문화에 영화라는 장르의 새로운 길을 닦기 시작한다. 1909년 수도 더블린에서는 국내 최초의 극장인 볼타가 설립되고 일 년 후에는 첫 아일랜드 영화이자 사상 처음으로 두 대륙,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제작되고 또 그 두 대륙으로 팔려나간 영화, 옛 아일랜드에서 온 아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무성영화의 인기가 최고조에 이르고 최초의 유성영화가 이제 막 인기를 얻으려 하고 있을 때인 1910년에서 1940년 사이, 아일랜드는 마크 설리번이 세운 아일랜드영화회사를 통해 상당수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이 시기 주요 작품들로는 프레드 도노반의 낙나고 (1917), 존 맥도나의 윌리 레일리와 콜린 본 (1920), 조지 듀허스트의 아일랜드의 운명 (1926) 그리고 최초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영화인 톰 쿠퍼의 새벽 (1936)이 있다. |
| 아일랜드 영화를 위하여
그 후 20년 동안에 아일랜드 영화산업 육성을 위해 또 하나의 조직이 설립되었다. 바로 국립영화위원회로서 농촌 기술개선, 재정관리, 건강 등의 주제를 다루는 유익한 영화들을 장려하였다. 이 시기, 영화제작자 게일 린은 아일랜드어로 된 영화들이 영어로 된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자국 영화 홍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때 가장 두드러진 아일랜드어 영화 중 빼놓을 수 없는 단편 뉴스 시리즈인 암하라 에이는 이 장르의 영화들 가운데 가장 오래 상연된 영화가 되었다. 또 조리 모리슨 감독은 미스 에이레 (1959) 와 시얼샤 (1960)의 두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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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영화 70년대에 들어서는 새로운 풍의 영화가 등장하여 아일랜드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등의 문제들이 새로 제작되는 영화의 스크립트에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신경향 이외에도 TV의 보급으로 작가, 영화제작사, 그리고 영화제작에 관련된 기술자들의 전문화를 촉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습득된 풍부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한 영화, 밥 퀸의Caoíneadh Áirt Uí Laoíre (1975), Poitín (1978), 조 카머포드의 리퍼와 모델 (1988), 알란 길세난의 신에게로 가는 길 (1988)과 예언자의 노래 (1990)와 같은 영화들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최근, 주요 아일랜드 블록버스터 영화로는 패디 브레스나크 감독의 알리사 (1994), 닐 조단 감독의 크라잉 게임 (1992), 스테판 프리어스 감독의 스내퍼 (1993), 마돈나 주연의 영화 에비타를 제작한 앨런 파커 감독의 커미트먼트 (1990) 그리고 짐 쉐리단 감독의 나의 왼발 (1989), 카인의 반항 (1990), 아버지의 이름으로 (1993) 등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