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영화

Wiener Kunstfilm

오스트리아 영화

오스트리아 영화는 무성영화 시대였던 20세기 초에 태어났다. 이 시기 오스트리아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보통 프랑스 회사들에 의해 제작된 짧은 뉴스 필름들이었다. 몇 년 후, 초창기의 오스트리아사람들이 카메라를 가지고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스트리아 최초의 영화 프로젝트가 되었다. 그 결과 사진작가였던 요한 슈바르처가 단편 에로영화 시리즈를 제작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영화의 발전은 '샤샤'로 더 잘 알려진 알렉산더 코로와트가 빈에 최초의 대형 영화스튜디오를 설립하면서 시작된다. 오스트리아 영화의 선구자였던 그는 흥미롭게도 오스트리아가 아닌 미국에서 태어났다. 개인적 사정으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도피한 그의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몇 년 후, 알렉산더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샤샤 필름이라 불리는 영화사를 설립하여 1922년 소돔과 고모라라는 서사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이 영화사는 인기 있는 뉴스 필름 제작에 힘을 쏟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그들의 첫 번째 픽션영화 제작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1918년경에는 비너 쿤스트라는 또 하나의 영화사가 설립되어 몇 년간의 노력 끝에 약 30년 동안이나 지속한 비너 시네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

비너 시네마

지난 반세기 동안 인기를 누린 이 장르는 19세기 빈의 일상생활 이야기에 코미디, 드라마, 그리고 로맨스를 가미한 것이었다. 분노와 행복과 같이 대립하는 감정들의 병치가 이 장르의 특징 중의 하나였다.

비너 시네마의 인기 비결의 하나는 오스트리아 환율의 약세와 다른 나라들보다 비교적 싼 영화 제작비용을 꼽을 수 있다. 이 시기 연간 제작되는 영화는 수백 편에 달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영화 제작자들로는 영화 한 코미디언 (1935)의 에리히 엥겔과 한 줄기 빛 (1933)이라는 걸작을 남긴 폴 페조스가 있었다.

뮤지컬 시대와 갑자기 찾아온 변화

제1차 세계대전 후, 전원의 삶에 관한 뮤지컬들이 예술계와 비평가들에게 차차 인정을 받기 시작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 장르는 더욱더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시기의 수많은 작품들은 전쟁의 끝나갈 무렵의 치열했던 싸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창의적인 방법으로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오스트로 헝가리안 제국 시절을 그려냈다.

70년대부터 90년대에는, 그동안의 기술적 발전과 신세대 영화제작자들에 의해 오스트리아 영화의 새로운 장르가 생겨난다. 또한, 할리우드의 영향을 받아 액션, 픽션, 판타지 그리고 테러 영화들이 오스트리아에서 자신들의 길을 열어나가게 되었다.

     

Erich Engel

The Counterfeiters

 

오늘날

현대 오스트리아 영화들은 신랄하고 사실적인 사회 드라마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아오고 있으며, 90년대 이후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하게 된다. 그중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영화는 바로 2007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스테판 루조빗츠키의 카운터페이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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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cine austria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