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투갈 영화 비록 사용된 영사기들은 유럽의 최신식이었지만, 포르투갈에서 최초로 상영된 영화들은 포르투갈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의 영화제작자 로버트 윌리엄에 의해 제작된 영화들이 포르투갈의 민간 영화 프로모터들에 의해 사들여져 1896년에 리얼 콜로세움에서 영화 시연회가 열리게 되었다. |
|
|
시작 최초의 영화가 상영되고 나서 약 10년 후, 포르투갈 최초 몇몇 영화제작사들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가장 중요한 영화제작사 중의 하나는 거장 누네스 데 마토스에 의해 오포르토에 세워진 인빅타 필름이었다. 이 영화사는 포르투갈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전문적으로 제작하였다. 한 편 리스본에서는, 후앙 프레이레 코헤이라 같은 전직 사진작가들이 캄푸 그란지의 꽃들의 전쟁 (1907)과 디오고 알베스의 범죄 (1909)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성공을 거두게 된다. 얼마후에는 훌리오 코스타와 후앙 알메이다가 포르투갈 영화의 제작과 보급을 향상시키기 위한 이상적인 영화사에 자금을 대며 코헤이라의 모험에 가담하게 된다. 또 주목할 만한 일은 후앙 프레이레 코헤이라가 바로 최초의 포르투갈 영화관의 설립자라는 것이다. |
| 양 대전 사이의 시기
전쟁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에도, 포르투갈 영화제작자들은 코미디, 음악과 같은 장르를 영화와 결합하여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반영하려 노력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영화로 프란시스코 리베이로 감독의 더 컨트리야드 오브 더 발라드 (1942)와 아서 두아르테 감독의 오 코스타 카스텔로 (1943)가 있었다. 같은 시기, 고위관직자들의 지원을 받아 영화의 우경화가 짙어지게 되는데, 이런 영화로는 마누엘 가르시아의 카스트로의 이네스 (1945)와 아르만도 데 미란다의 검은 망토 (1947)가 있다. |
|
|
|
시네마 노보 시대 이 운동은 신사실주의자와 프랑스 영화의 신경향에서 영감을 받아 60년대와 70년대에 포르투갈에 기반을 둔 브라질 영화제작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시네마 노보운동으로 유명한 감독들은 파울로 로샤, 안토니오 다 쿤하, 그리고 페르난도 로페스가 있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포르투갈에서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 할 수 있는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 감독은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31년에 단편영화 듀로강에서의 중노동으로 영화감독의 길을 걷게 되지만 40여 년 후 베닐데 (1975)라는 영화로 감독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30여 편이 넘는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는 프란시스카 (1979), 수도원 (1995) 그리고 불확실성의 원리 (2002) 등이 있다.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영화산업은 시네마 노보 운동으로 얻은 중요성마저 잃어버리며 급격하게 침체하게 된다. 그러나, 카를로스 코엘료의 아마로 신부의 범죄 (2005)와 같은 영화들은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받게 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