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의 인터뷰

       코끼리

감독과의 인터뷰

어떻게 서커스단과 코끼리에 대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셨나요?

저는 이야기를 만들 때 항상 주제와 메타포를 깔끔하게 단순화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 이야기와 이미지를 다채롭고 깊게 만들 수 있어요. 10년 전에 알렉산더 도르비니안이 탈고해냈던, 학창시절 본인이 듀로브 서커스단에서 일하며 코끼리 똥을 치운 이야기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지난 십 여 년 동안 모스크바의 많은 제작자들이 이 이야기를 읽었지만 아무도 작품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죠. 저는 그의 이야기를 읽는 순간 '아!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해보세요, 코끼리는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이 아니에요. 아주 거대하죠.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에요. 게다가 저는 코끼리가 어떤 비유라는 것을 발견했어요. 바로 기적이에요. 모든 사람들이 찾고 기다리고 있는 기적. 우리 삶의 의미, 믿음, 사람의 기분, 동정, 고결 같은 가치들을 담고 있는 기적이요. 기회는 신이 내려주는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것이 존재하는지 느끼지는 못하죠. 이와 같이 극중에서도 인물들은 코끼리의 존재는 알지만 그것이 기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요.

원작의 인물들을 살렸어요. 코끼리, 트럭 운전수, 소녀 단원, 서커스 단원들, 그리고 두 개의 중요한 장면도 살렸는데 코끼리가 병들어 안락사 시키게 되었을 때와 운전수가 코끼리를 아들에게 데려가는 장면이죠. 다른 부분은 어느 정도 각색하고 장르도 좀 바꾸었어요. 작가는 화를 냈지만 이미 우리에게 대본을 판 뒤였죠. 초벌편집을 완료하고 저는 알렉산더를 불러서 첫 시사회를 했어요. 저는 작가가 '와 대단한 영화에요!'라고 말해줄 줄 알았죠.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그가 한 달 전에 사망했다는 소식만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제 진실한 감사를 전하지 못하고 그의 참신한 이야기가 현실화되는 순간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쉬워요. 우리의 창조적 견해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알렉산더 용서해요. 나는 항상 당신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편히 쉬시길!

음악가를 그만두고 영화감독이 되려는 생각은 어떻게 했나요?

저는 여섯 살 때부터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했어요. 특수음악학교에 들어가고 키에브 음악학교에 진학했죠, 모스크바 음악학교에서 석사를 마쳤고요. 저는 약간 광적이어서 하루에 열 시간도 연습하곤 했어요. 무대가 제겐 마약 같았고, 천국이었죠. 모스크바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4중주 팀과 벨기에로 여행을 갈 일이 있었어요. 돌아오기 일주일 전 즈음 빌딩에서 극작 수업에 대한 광고를 봤죠. 호기심이 강의실로 절 이끌었어요. 하지만 이미 모든 수업이 마감된 상태였고, 2년 뒤에나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하지만 제가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거기에서 아주 무례한 직원을 만났죠. 대화를 나눈 후 저는 저의 이탈리아 바이올린을 팔아 그 돈으로 모든 수업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입학할 기회를 얻었죠.

그날 저녁 친구에게 모든 이야기를 했죠. 모두가 떠나고 한 밤중에 저는 그 동안 적은 지원서를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요구 조건을 모두 다시 읽고 제 인생을 '예술적 방법'으로 다시 적기 시작했어요. 그게 성인이 된 후 제 삶을 제 3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첫 경험이었을 거예요. 모든 사건들을 돌아봤죠. 제 결정들에서 논리를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느꼈던 것, 원했던 것, 행동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정리했죠. 제가 얼마나 저에 대해 몰랐는지 깨닫고 놀랐어요!

필요한 모든 것을 마치고 영화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아다바시안 학급으로 저를 받아주었죠. 저를 처음에 맞았던 그 무례한 여성은 사실 아주 대단한 분이었어요. 레나 콘스탄티노브나라는 작가였죠. 그 분은 제 새로운 삶의 대모가 되어주셨죠. 그리고 바이올린을 팔 필요도 없었어요. 베라 수메노바와 아바다시안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영화에 대해 공부해야 했고, 음악을 할 시간은 없었어요. 바이올린을 그만두고서부터 배신감, 죄책감, 상실감 때문인지 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려워졌어요. 뛰어난 선생님들, 밝은 개성들, 영화에 대한 엄청난 정보들, 스스로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들에 압도되어서 뻔뻔하게 눈을 감아버리고 영화 세계로 몸을 던졌죠. 나중에 음악과 영화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기본적인 방법은 동일해요. 음악가들이 매일매일 반복하는 '유리알 유희'라는 게 현대 영화에서는 덜 필요하다는 것 말고는요.

'코끼리'를 찍으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었나요?

어린이와 동물이 가장 뛰어난 연기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그리고 배우들이 그들과 같은 자연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렇기에 캐스팅 과정이 참 힘들었죠. 우리의 주연배우 세르게이 슈누로브는 사실 배우가 아니라 락 뮤지션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코끼리처럼 아주 자연스러울 수 있었죠. 아나스타샤 스메타니나는 아주 빨리 요점을 잡아요. 코끼리가 그녀에게 모래찜질을 시켜주었을 정도에요. 덕분에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창의적인 동시에 정직하도록 만들어야 했어요. 배우들은 극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촬영 순간이 되어서야 어떻게 될 지 알 수 있어요. 어떨 때는 우리 배우들을 의상부터 분장까지 완벽하게 준비시켜놓고 한 시간 동안 오리와 비행기만 촬영한 적이 있어요. 그들이 제가 보기에 완전히 항복했다고 생각되었을 때 영화가 전체적으로 안정된 분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죠. 그들은 더 이상 촬영할 때 제게 화내지 않았어요. 이건 근엄하게 있는 것 보다 더 마법 같은 힘을 발휘했죠. 그래도 여전히 배우들과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해 재미있는 일화를 들었어요. 아마 보디랑 촬영하고 있을 때라고 들었는데?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죠. 화면에서 코끼리를 본다면, 그건 주변 어딘가 다른 한 마리가 더 있다는 뜻이에요. 우리는 오랜 시간을 들여 적절한 동물 친구를 찾았고 마침내 발견해냈어요. 바로 폴란드 코끼리 제니와 마그다예요. 둘은 아주 친한 친구라서 한시도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죠.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7m 이상 떨어뜨려 놓으면 불안해하기 시작하고 소리를 지르고 다른 한쪽에게 뛰어가요. 길목에 있는 것들 망가뜨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이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고

모험도 해야 했죠. 가끔 기다리고 있는 코끼리부터 찍어야 할 때가 있었어요. 나중에 우리는 그들의 친밀감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어요. 그들의 동작을 통제하는 방법을요. 그들은 멀어질수록 더 빠르게 뛰어갔어요. 우리는 뛰어난 조련사를 데리고 있었지만, 종종 단원들이 극한 상황에 직접 뛰어들어야 할 때가 있었어요. 그들의 목숨을 걸고서 화난 코끼리가 뛰어 오는 것을 피해야 했죠.
우리는 엑스트라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코끼리가 걸어 다니는 모든 장면은 다 사실적인 장면이에요.

코끼리와 작업하면서 동물의 권리나 정치적인 문제는 없었나요?

극중 인물들이 코끼리가 양배추를 먹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처럼 대중들의 반응도 아주 진실했어요. 벨로루시안 농부들이야 새벽 5시에 코끼리 두 마리가 자기 농장에서 돌아다니는 걸 보고 당황 했겠지만요. 양치기가 성호를 긋고 재빨리 떠나는 걸 보시면 그가 전날 마신 술이 덜 깼다는 건 짐작이 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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